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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25 11:53
Aviator 손목시계
 글쓴이 : shadow
조회 : 2,185   추천 : 1  

설합정리를 하다가, Aviator 손목시계가 나와서, 꺼내어 손목에 차 보았습니다. 가죽으로 된 벨트에서 따스한 기운이 손목을 감싸고 스며듭니다.

 

얼마 전인, 지난달, 20년 지기인 박호선 선배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20년 전 비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선배님의 덕분이었습니다.

 

어릴 적, 625동란으로 한국군이 후퇴를 거듭하여 낙동강 이남으로 밀려난 때, 공군은 그 전선을 경주의 임시 비행장(황성공원)으로 이전하였고, 임시 본부를 경주에 있었던 나의 본가에 설치하였습니다. 물론 그때에 나는 식구들과 함께 울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전선은 다시 북상하여 피난에서 돌아 온 후에도 한동안 그 임시비행장(황성공원)에서 많은 군용기들이 이착륙하였고, 시간이 날 때면 그 광경을 어린 눈으로 열심히 보고 나도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마음껏 비행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다 마치고 취직하여 회사에 다니면서도 항상 하늘을 날고 싶다는 어릴 적 생각은 마음의 밑바닥에 그대로 깔려 있었습니다. 물론 출장 시에 Airline을 이용하면서 비행기는 원 없이 타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어릴 적부터 바라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잠재의식 때문인지, 한번은 “Readers Digest”잡지를 읽다가 보니 영국에서 David Cook이라는 분이 2인승의 아주 경이적인 비행기를 제작하였다는 기사가 실려있어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아마도 90년대 초 토요일, 우연히 TV를 보다가 한국에서 그 David Cook의 비행기를 여러 동호인들이 타고 비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눈이 번쩍 띄어 곧바로 방송국에 전화하여 그 동호인 그룹을 알아냈습니다.

 

작고한 박호선 선배님이 이끄는 작은 비행동호회였습니다.

 

선배님은 자비를 들여 영국으로 가서 David Cook을 만났지요. 당시 그 비행기는 영국 외, 호주의 한 거부에게 판매되어 영국에서 호주까지 비행하여 건너 갔을 뿐, 그 어느 다른 나라에도 판매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 동쪽의 작고 이름 없는 나라 한국에서 온, 비행기 조종에는 문외한인 사람에게 Kit의 판매를 허락할 리가 없었지요. 그래도 굴하지 않고 모형비행기를 제작 운영한 풍부한 경험을 내세우면서 계속 판매를 요구하니까, 2가지 조건을 붙여 판매를 허용하였습니다.

첫째는 영국에서 그 비행기(Shadow)의 조종교육을 충분히 받아 이수할 것, 두번째는 한국에서 Kit를 완전히 조립한 후 영국으로부터 그 비행기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전수 검사를 받고, 그 전문가의 감독하에 비행한 후, 그 전문가가 만족스럽다고 인정한 후 비행한다는 것입니다.

 

그 같은 과정을 거쳐 그 비행기(Shadow)가 국내에 도입되고 조립되어 몇 명의 동호인들이 비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참고로 David Cook은 그같이 훌륭한 비행기를 설계 제작한 공로로 영국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나는 잡지의 기사만 읽고 감동하고 있는 사이에 그 선배님은 직접 영국으로 날아 간 것입니다. 결단력, 실행력이 대단한 분입니다. 몇 해전 작고한 최형로(톰보이 창업자)회장님과 막연한 친구 사이로서 두 분이 한국에서 최초로 요트협회(대한 요트협회)를 설립한 바도 있고, 일반항공의 개념이 전무하였던 시절, 현 항공법에 초경량항공에 대한 조항을 신설하는데, 주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이 비행조종을 배우고, 영공을 비행한다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절, 비행기 조종하면, Airline의 기장을 꿈꾸며 항공대학에 입학하여 조종을 배우거나, 공사나, 군에 입대하여 군인의 자격으로 배우던 것 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 그저 평범한 일반인을 상대로 한, 항공기의 입문을 구축한 분이 바로 이 선배님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성 싶습니다.

 

주말이면, 몽산포 해변의 더 넓고 단단 모래사장을 활주로로 하여 비행하던 생각이 아련합니다. 당시 라디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포터블 아마추어 햄 라디오와 우리의 약속된 햄 주파수를 이용하여 장주 비행하면서 PTT를 누르고 말했던 내용이 귓가에 맴돕니다.

몽산포 Traffic, HL1OKD(나의 호출부호), Turning base.”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해 하면서 한번 태워달라고 하며는, 각서를 꼭 받아두고 태워 주웠습니다. 물론 각서에는 이 비행기는 시험용(Experimental)으로서, 국가의 공인된 감항을 받지 않아 안정성에 대한 책임을 본인 스스로….”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선배님의 안전에 대한 배려에서 강제로 이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지요.

 

선배님은 이원복회장님을 모시고 한국 초경량항공협회”(“대한  스포츠 항공협회의 전신)를 창설하였고 많은 비행동호인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이 협회가 모체가 되어 꿈만 꾸고 있던 그저 평범한 일반인들이 본격적으로 하늘을 비행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고 봅니다.

 

선배님의 도전 정신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탠덤 형식의 2인승인 David Cook Shadow에 필적하는, Side-by-side 형식의 2인승 Wizard(한국명: 까치)를 직접 설계 제작하였습니다.

나의 비행경험에서 볼 때, Wizard Shadow에 버금가는 비행성능과 안전성을 고루 갖추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한, Wizard는 대한민국 건국이래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이나 도움 없이 순수 민간인이 설계 제작하여 미국에 수출한 최초의 비행기입니다.

 

당시 제작된 이 비행기를 대상으로 항우연에서 공동연구과제로 협연하여 각종 비행성능을 세밀한 부분까지 수치로 측정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는 비용이 워낙 많이 소요되어 어느 개인이 설계 제작한 비행기를 이처럼 세밀히 측정한 예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이것만이 아님이다.

 

90년대 초, 국내에서 무인기하면 거의 원격무선조종 무인기 였습니다. 그때, 선배님은 무인자동조종장치를 개발 제작하는 미국의 한 업체를 찾아가서, 수출제한 품목이었던 이 장치를 도입하여 왔습니다. 물론 미국방부의 허락을 받는다고 겪은 고생은 한편의 소설로서 충분하지 않습니다.

 

1995년 이 장치를 Wizard에 접목하여 몽산포 해변에서 여러 관계기관이 참관한 가운데 성공적인 시연을 하였습니다. 비행할 항로와 수행할 미션을 입력한 후, 발진시키면, 원격 조종 없이 혼자서 스스로 이륙하여 모든 미션을 수행하고 스스로 착륙한 것입니다. 어느 국책연구 기관이나, 대학 부설기관의 도움 없이, 순수 개인이, 동호인 그룹이 이 것을 성공적으로 시연하였다는 것은, 그 비용이나 노력뿐만 아니라, 도전정신, 창의력, 등 모든 분야에서 가히 특종 감이 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뉴스와 각종매체에 대서특필되었고, 회기 중인 정기국회에서도 주요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대한민국 항공 회에서도 옥만호총재에서 김경호총재에 이르는 동안 같은 동료임원으로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대한민국 일반 항공의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된 분이라 믿습니다.

 

나는 90년대 초 선배님의 배려로 초 경량비행을 시작한 후, 미국 출장 중 시간이 날 때마다, 비행스쿨에서 Cessna 172, R22등을 배우고, Airplane/Helicopter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그 후 수 년 동안, 국내의 열악한 일반항공 환경을 개선하여 볼 요량으로 정신이 팔려나갔습니다.

 

그사이 선배님은 옛 생각의 긴 끈을 놓지 못하고, 요트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항해를 나서면서 나보고 동행하자고 몇 번 이야기를 하였지만, 솔직히 Open sea에서 요트를 타는 것이 영 Comfortable하지 않아 여러 핑계 겸 이유를 대면서 빠졌습니다.

 

한번은 내가 IFR하여야겠다고 말하였더니, “그 나이에 무슨 IFR을 하려고….”하면서, “IFR에서 Timing check를 많이 하니, 이 시계가 필요할거야.” 하고는, Aviator손목 기계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데, 그것이 선배님이 내게 손수 건네준 마지막 선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지금 손목에 스며든 따스한 기운을 느끼면서,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에게 항공의 문을 활짝 열어주고, 너무 일찍 아쉽게 떠난 한 분을 추모합니다.

 

2011 5월  최용택
(일반항공협회  Airplane/Helicopter FAA PPL SEL, 자가용 조종사, 회전익항공기/비행기,육상단발, 경량항공기 조종사,타면조종비행기  010-5270-5144)


하늘평화 11-06-29 11:30
 
삼가 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야 소식을 알게 되어, 늦었지만 마음 속으로 분향 재배 올립니다.
님께서 보여주시던 그 정열과 추진력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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